7년전쯤
동묘앞 헌책방에서
박문성이라는 사람의
일기장을 샀다.
이런저런 책과 함께 사서
가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가지 앏은 공책들을
두꺼운 실로 묶어 만든 이 일기장에 글과
나의 사진을 병치시켜 작업을 만들었다.
두명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가 될수 있을까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 만에 아우라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짜리 작업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묵묵히 하는 것입니다.
평론가들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미지입니다.
제 삶의 흔적 같은 것입니다.
혹시라도
너무 화내거나 노여워하시거나
불편해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냥 하루씩 해보겠습니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기엔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고통스럽지만
그럴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하루 만에 아우라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짜리 작업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묵묵히 하는 것입니다.
평론가들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미지입니다.
제 삶의 흔적 같은 것입니다.
혹시라도
너무 화내거나 노여워하시거나
불편해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냥 하루씩 해보겠습니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기엔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고통스럽지만
그럴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합니다.
꾹 꾹 눌러 가며 달린다는 느낌이다.
함부로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나의 상태를 계속 살펴가면서 조금씩 달리는것이다.
흥분해서는 안된다.
조금 상태가 괜찮다고 자만하는 순간
무리하게 되고 내일 달릴수 없는 상태가 된다.
조금씩 침착하게 달리는것이다.
그래야 오래 달릴수 있다.
혹여나 좀 상태가 괜찮다고 느껴져서
무리한 달리기를 한 날에는
내 자신을 잘 달랜다.
그래 잘했다.
그래도 빠르게 잘 뛰었다.
자책은 하지 말자
나에게 달릴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 하루에 감사하자
내 작업이 모래 같다고 느껴질때가 있다.
다윗은 조약돌이라도 들었지,
나는 모래 한 알을 들고있는 느낌이다.
쓸모없는 이야기들, 이미지들
이렇게 하다가 흩어질것 같다는
공포가 문득문득 들때가 있다.
그래도 해야한다. 써야 한다. 채집하고 분류하고 올려야 한다.
한사람이라도 힘이 된다면 해야만 한다.
예술이 위로가 되거나 메세지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해야할 일이 그럴것 같아
하는 것이다.
힘이 되는 예술을 하고 싶다.
고통만 남은 나의 과거야
소년아
아가야
이제 괜찮아
괜찮아.
이제는 안전할 거야.
난 용서 받아야할 사람이다
잘한 것이 없다.
알고있다.
그것을 안고 가는것이다.
내가 잘못한 사람들의 고통이
나에게 온다.
잘한 것이 없다.
알고있다.
그것을 안고 가는것이다.
내가 잘못한 사람들의 고통이
나에게 온다.
페이소스
악인이 저물어가는 과정을
보고있는것이다.
그러다 혹여나
예수님이 날 봐주실까
하는것이다.
만약 내가 일이 잘 풀리게 된다하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난 그 댓가를 다 받았을 수도 있다.
교만하지 않겠다.
그저 감사하면서 조금씩 감사하면서
살아가겠다.
그 깊은 방안에서
태워버렸습니다.
태운다는 행위는 무엇입니까
사라진다는것.
사라진다는것은 무엇입니까
사라진다는것이무엇입니까
사라진다는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약간 슬픈날
잠을 자버리면 그만인 그런 슬픔
잠이 잘 오길.
오늘하루를 잘 태울수 있는 깊은 잠이 오는
밤이 되길.
나의 방은 푸르고 깊은방
나의 무기력함이 심연으로 갑니다.
그 심연안에 힘이 있더군요.
나의 기민한 감상의 더듬이가
나를 아프게 합니다.
더듬이를 자르면 또 자라납니다.
내가 괴롭혔던 수많은 개미들.
더듬이를 자른 개미들은
갈길을 알지 못하고
허우적거립니다.
그 고통을 바라보며 깔깔된 덕분에
나의 더듬이도 제가
손톱을 물어 뜯는것 처럼 물어 뜯는것입니다.
사진을 찍는것은 나의 쏟아지는 감정들을 털어내는 좋은 수단이었다.
필름사진을 할때는 필름을 찍고 현상되는 시간의 틈으로 나의
우울이나 슬픔을 덜어버릴수도 있었다. (낚시와 비슷할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우연히 EBS에서 꿈꾸는 카메라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인도의 캘커타의 거주하는 아이들이 사진을 배우면서
삶에 대한 의지가 바뀌고 아이들의 환경을 바꾸기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모습이 나에게 뜨겁게 다가왔다.
마치 이것을 해야만 한다는 가슴이 터질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벅차다
사진으로 무엇인가를 하고싶다
세상에 어떤 아름다운 것을 말하고 싶다.
곤경에 처하거나 아픔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소개해 주고 싶다.
그게 나의 기도이다.
커피는 사진처럼 나의 다른 도구였다.
커피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에 감사하다.
커피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어설프게나마
꺼낼수 있어서 좋았다.
커피를 사랑할수 있어서 다행이다.
강배전커피를 20g 사용한다.
굵게 그라인딩한다.
융을 사용한다.
물의 온도는 100도
융을 끓인 물로 적셔 놓는다.
뜸들일때 커피빵이 생긴다면
충분히 젹서 30초 뜸을 드리고,
로스팅 시간이 좀 지나 빵이 생기지 않으면
뜸들이고 바로 드립을 시작한다.
처음 200ml는 천천히 드립하고
100ml 추가로 물을 최대한 많이 빠르게 붓는다.
100ml 정도 가수하여 드립을 끝낸다.
내가 처음 시작한 사진은 싸이월드에서 였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 시작한 사진이었다.
그 친구에게 어떤 문자를 보낼지
3시간이고 4시간이고 고민하던 그때
사진은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도구 였다.
그렇게 사진으로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는 날 수치화하면서 키우지 않았다.
누구는 어떻더라 이렇게
말씀하신적은 없다.
나는 나로 키웠던것이 감사하다.
도구의 인간이 아니라
존재의 인간인 것이다.
그것이 요즘에 중요한 것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대체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유일한것이다.
사진으로 나만 할수 있을 이야기가 분명 있을것이다.
유일의 존재.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지만 달릴때처럼 무리하지 않으며 조금씩 해 나간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
당신 또한 할수 있다
당신도 유일한 존재다.
호텔에서 나와 담배를 태웠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해외에 있었을때
어떤일들을 했었는지는 비밀이다.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3개월의 시간동안 수많은 일들을
자행했다.
자행
스스로 내가 결정한 행동 들이었다.
그것은 자유롭고 기분좋은 일 들이었다.
철거일로 이리저리 불려다닐때
시대가 바뀌는 바람에 망해버린,
부산대학교에있던
신나라레코드를 철거한 적이있다.
샘플로 틀었던 시디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고
난 중고라도 팔아볼 생각으로
마대에 몰래 담에 한무더기를 가지고 왔다.
집에 돌아와
더러워진 작업복을 세탁기에 바로 넣었다.
몸을 씻었다.
퇴근할때 컵라면과 편의점 주전부리들을
따뜻하게 돌려놓고 소주를 마셨다.
철거할때 벽에 붙어있던 시디 플레이어로
손에 집히는 대로 틀어봤다.
첫 앨범은
찰리버드의 앨범
세상은 빠른 드럼의 소리만 들렸고,
그 음악안에 불규칙한것같은 드럼의 소리는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부숴버리는 소리에서 다시 연합되는 소리들로
나를 다시 만들었다.
부서지는 소리가 리듬으로 치환되는 순간 이었다.
새들의 날개짓 소리들이 내 방안을 가득채웠다.
힘차게
보라 세상의 짐을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오늘 하루 마음이 어떠셨나요?
내일은 금요일 입니다.
주말동안 편히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좋은 일들도 있길 바랍니다.
작은 감사한 일들이 많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같이 일을 했던 친구중에
투가이로 불리는 터키에서 온 젊은 친구였다.
밝고 리더십이 있어서 주변의 친구들을 이끌며 일을 했다.
책임감도 강해서 2000만원 가량을 모아
결혼자금으로 쓴다고 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꾸깃한 담배를 나눠피던 기억이 있다.
일도 참 잘했었고 서글서글 했던 친구였다.
같은 인대에 문제가 생겼다.
달리때마다 내일 또 달릴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서 버린다.
하지만 지금 나는 뛰고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달렸으니까
그것에 집중하고 감사한다.
서두르지말고 기다리면
더 강해질것이다.
괜찮다.
하루 지나고,
자고 나면 좋아진다.
선잠 이라도 좋다.
잠깐의 그 잠, 졸음이 당신의
기분을 다시 좋게 할수 있다.
주어를 말하지 않는다
모호하게 표현한다.
사진은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것들을
몰래 내비칠수 있다.
나의 아버지는
사진을 좋아했고
커피 또한 좋아하신다. (아직도 집에서 로스팅을 하신다)
집에 음향도 꽤나 괜찮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섬세한 사람이다.
너무 섬세하면 아픔이 많다.
지금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용서는
내 자아의 용서이기도 하다.
나의 부모님을 사랑하는것을
포기 하지 않을것이다.
엇박을 타는 피아노 재즈 연주자들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누나의 어릴적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Never Let Me Go - Bill Evans를 듣고있다.)
초등학교때 였다.
집에서 누나는 밝지 않은 표정으로 피아노연습을 하곤 했다.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
종종 정박자에 피아노를 치다가
손가락이 약간 떨면서 고민하고,
건반을 파르르 누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어릴때 느낀
누나의 고통이나 강압
고민들이 건반들에 묻어나왔을 수도 있다.
파르르 떨던 그 손으로 건반을 통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촌스러운 나의 우울에 대해.
작업에 자신의 감정을 담는것이
촌스럽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다.
세련을 찾는것을 보니
세련되지 못한 행동이다.
그래도 작업은 계속 한다.
아이들이 잠들면
나의 방은 깊은 바다가 된다.
어부처럼
난 이미지들을 끌어 올린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예술가들은 자아를 박제시킨다.
자신의 작업에 끊임없이 *메멘토모리 하는것이다.
죽음을 기념 우리의 죽음을
예술가의 죽음을 기억하라
행복했다
그래도 하고싶은거 하다가 가서
행복했다 하더라
오늘 봄을 느꼈다.
1월
햇살이 미적지근하게 나의 몸을 데우는것 보면
벌써 봄이 왔다.
죽으면 다시 생명이 온다.
나무들을 데우고 풀데기 들 산과 바다
이땅을 햇살이 데우기 시작하면
다시
생명이 온다.
*메멘토모리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
초원 태우는 꿈을 꾸었다.
물 하나 없는 모든것이 마른 초원에
불을 질렀고
내 앞에 모든것들이 다
검게 변했을때
불씨 하나 없는 상태가 되었을때
비가 가득가득
아주 가득 내리는 꿈이었다.
글렌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곡처럼
단순하게 살고싶다.
하지만 나의 의지를 담아
나의 숨소리들을 담아 살아내는것이다.
작은 미세한 것들은
감상자의 심상을 건드릴 수 있다.
글렌굴드의 허밍이 빠지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삶에도 빠지지 않는 숨소리가 있다.
*글렌굴드의 바흐 골드베르크 앨범을 들어보면 그의 허밍을 들을수 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 기분이 좋군요.
반가웠습니다.
그저 시시껄렁한 이야기였습니다.
건설적이지 않은 그런 대화.
나에겐 그런게 필요했어요
그냥 이야기들 농담들 가벼운 대화
부담스럽지 않은 공기와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순간들입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할아버지의 포즈와 옷 표정 모두가 마음에 든다.
적절하게 어두운 배경과 잘 대비가 된다.
이럴때면
동묘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싸게산듯 기분이 좋다.
좋은 사진들이 또 나올수도 있으니
잘 찾아봐야겠다.
동묘는 기묘하고 설레는곳이다.
어릴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여행오면,
옛날에 잘하면 탱크도 살수있다는 청계천 시장에서
호기심으로 가득차서 구경했던 그 물건들이
비슷한 모양으로 놓여져있다.
어디에 쓰이는지도 잘 모르지만
물건들을 구경했던
그 설렘들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좋은 기억이다.
일기 같은 나의 작업은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낱말들의 모음이다.
작업이라고 하기엔
사소할 것이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믿고 끝을 내야 할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달렸던 것처럼
걸려 넘어졌다고 생각하자.
다시 훌훌 털고
나만의 페이스로 다시 달리면 된다.
느리던 빠르던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달린다는 사실 하나가 가장 중요한것이다.
바른 자세로 다치지 않도록
달려야 한다.
요즘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아서
작은 내용에도 예리하게 느껴진다.
약해지고 여려진 느낌이다.
살얼음 판을 걷듯이
허나 솔직하게
대담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수 있기때문이다.
힘들다고 뛰지않으면
나의 기록은 거기까지 인것 뿐이다.
그것도 충분히 좋지만
조금더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고통스럽더라고
예리한 한마디를 하는것이 좋다.
나의 대답에 상대방의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한마디 하는것이 필요할듯하다
효제동에 있던 교회가 불에 탔다.
다행이 사람은 없었고
교회옆 초등학교에 있던 학생들은 대피를 잘 끝냈다.
우연히 지나간 그길에서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마치 살아있었다는 듯이,
열을 희미하게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지울수 없는 나의 우울함을
나의 슬픔을 참을수 없어
다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새해부터 힘든 하루였습니다.
나이만 들어간다는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울줄 몰랐습니다.
나의 신아
나를 보살펴주세요.
갑자기 몰려오는 두려움이 너무나 큽니다.
빨리 잠이오길 기다려봅니다.
하루가 지나면 괜찮아질겁니다.
일어나
조금더 개운한 마음으로
살다보면
좋아질겁니다.
이렇게라도
하루 써 놓으면
내일은 여유를부리며 또 제이야기를
금새 털어놓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