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편 118편 22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유함은 우리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물건의 숫자에 비례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몇십만의 인간이 한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 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부활>

  17년여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오고가던 버스표나 여행 갈 때 보관해둔 비행기표, 기차표, 영화, 티켓등 별 물건들을 모아둔 것들이다. 삶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10km씩 달려도, 전시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도, 내 안에 채울 수 없는 헛헛함과 좌절감, 슬픔, 안 좋은 기억들이 몰려왔다. 나의 물건들은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일종에 방아쇠 같은 것들이었다. 좋은 기억과 죄책감이 동반한다. 혼재되어 나의 삶을 혼탁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다지만 나는 조금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 편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물건들이 어쩌면 물성이 있는, 텍스쳐가 있는, 입체적인 면들을 가지고, 내 방 한편 어딘가에 부피를 차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물건들을 촬영해야겠다는 생각들은 이따금 했다. 하지만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기도 했고, 대략 25cm 정도의 정사각형 깡통 상자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방아쇠는 아주 작다. 작은 것들이 내 영혼을 겨누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버리기로 결심했다. 촬영을 끝내고 지체없이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 (아내가 분리수거하라고 야단을 쳐댔다.)
  버려진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교훈. 쓸모없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다시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 주성치 영화의 한결같은 교훈과 비슷한 것일 수 있겠다. 버려진것들, 잊혀진것들에서 다시 의미를 찾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일 수 있겠다. 돌아보니 나의 작업은 항상 이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POAP(Personal Object Archiving Project)는 물건 영정사진이다. (사물이므로 영정사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다.) 더 나아가 우리 과거를 이제는 순순히 보내주는 순간들로 만들어 주고 싶다. <걱정말아요 그대> 가사에 나온 것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던 것이다.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남기고 싶으면 연락바란다.
우리의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자.
seeasmallcloud@gmail.com 혹은 @xndudprojection DM을 주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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